드라이기 소리를 들으며 뜨신 바람에 몸을 맡기는 꿈을 꾼건지 상상을 한건지. 눈을 떠서 한참을 꾸물거린다. 목에 살이 찐건가, 묵직한 돌 하나가 목 위에 올라간듯 침을 삼킬 수가 없다. 감기도 아니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닌데 잘 삭은 가랫덩이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듯 뱉어진다. 차라리 시원했다. 며칠 목구멍이 버거워서 예민했는데.

요즘 집엔 또 다른 냄새가 난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지각하지만, 어디서 많이 맡아본 익숙한 냄새같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케미같기도 하고, 이내 곧 익숙해지지만 봄의 축축함같은 냄새.


사월이다. 언제나 계절은 예고도 없이 잔인하지만 사월은 원래 '잔인한 사월'이니까 그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날을 잡고 대청소를 하고 싶은데, 침대를 옮기거나 온갖 먼지를 닦아내거나 제자리의 물건들을 들어낼 만한 의지가 없다. 여름이 오기 전엔 마음 먹고 엎어야겠다.

나는 요즘 외로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가 현격하게 차이난다. 김수빈이 실없이 농담으로 한 말이 윙윙 맴돈다. 나는 외로운가?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있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정의했는데,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만큼 적막한 곳이나 말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장마가 내리는 곳으로 가고싶다면 그것도 외로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를 할거다. 윙윙 돌아가는 빨래를 지켜보고 끝났다는 알람이 울리면 탈탈 털어 잘 널어야지. 햇빛의 방향에 맞춰 빨래를 조준하고 바싹 말려야지. 그렇게 습한 감정과 이유없는 슬픔들도 바짝 말려야지. 술도 영화도 넋두리도 아닌, 정갈하고 깨끗하게 잘 정리를 해야지.

연기는 그림자가 없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품는다. 텅 빈 새장은 언젠가 채워질 것을 안다. 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허지혜와 무슨 말들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요즘 하는 말들은 자꾸 머물지 않고 날아가버린다. 솔직하지 않은 말은 아니다. 말을 위한 말도 아니다.

진심이 아니냐? 그건 또 아니다. 그냥, 신경이 쓰이는 건, 다만, 발성으로 깔린 목소리에 빠르지 않은 템포로 내쉬는 말을 쳐다보는 당신들의 눈빛이다.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빗겨가는 진실과 진심들이 자꾸 겁이 난다.

나의 진의를 나조차도 모르는데, 그 말들이 잘리고 접혀져 무엇으로 박히는 것이 싫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때론 영원할 것처럼 때론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처럼 그림같은 이이고 싶다. 그것이 나 혹은 당신들에게 잔인하더라도, 그것이 나 혹은 당신들에게 편안하더라도.


이런 마음의 발로는 멈출 수 없는 외도의 유혹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머물어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여태껏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르게 계보 속에 낙인으로 남고 싶었나보다.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했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것을 통해 그토록 그려왔던 이별의 상실에 허우적거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임. 그것은 나의 위치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한가를 떠올렸을 때 지금 그렇다고 활짝 말할 수 있는지. 그럴 리가. 한강의 시에서처럼, 외로운 어깨뼈와 어깨뼈가 만나는 순간 쨍그랑거리던 먼 풍경의 소리를 내던 순간이 지금만 같다. 1년 간의 관계와 그 속은 나의 이데올로기였을까.


더이상 너도 없고 너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나갈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순간들이 떠오르는 이 날들과 지난 날들의 괴리를, 그 간극을 빌려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곳은 한낮이고 그곳은 신새벽인.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감정을 느껴서 상대성의 원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멀미가 난다.

세월호 때문일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비겁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잖아.

그냥. 그냥. 정말 그냥.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통로로 뛰어내렸는데 그 터널은 끝이 없어 추락하다가 상승하다가를 반복하는 느낌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느낌은 충만하게 느껴지게도 한다는 것. 하하. 목과 어깨가 끊어질듯 저려오는 날에 보잘 것 없는 햇빛이 내리쬐듯 희한하게도 그것은 나른하다.


말은 떠돌아 어디에 가닿았을까.

님. 이제부터 '너'도 아니고 '그대'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다. 아득히 은하수로 떠내려간 너는 부스러기처럼 님이 되었다고 말해본다. 무튼.

님을 떠올리며 완벽한 마음-모든 명문화된 단어들이 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으로 써내려간 문장과 단어를 님에게 덜덜 떨며 전했다. 에잇. 싫어졌어.

쨌든, 그 말들은 마음을 말하는 동시에 정체를 말했고 그를 둘러싼 세계를 말했던 것이었다. 오롯이 주인이 정해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보여질 수 없는 말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목적과 방법과 결과가 모두 완벽한 것이었으니. 그 항로에서 빗긴 어느 곳이든 어느 때든 바스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제 3자에게 재생산된 말들을 목격했다. 이건 배신감이었다. 그러다 어찌할 수 없는 나는 그 말의 저작권을 찾아갔다. 그 말들의 주인은 나일까, 너일까, 그 누구도 아닐까. 내가 너무 협소하고 옹졸한 건가.


공항에 가고 싶다. 활주로를 달리며 예열하던 비행기는 이륙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보자.

- 샤갈/달리/칸딘스키 전시회를 찾아보자

- <줄리 앤 줄리아> 같은 영화 몇 개를 다운받자

- 자전거를 수리하자

- 해리포터를 읽자

- 여행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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