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아마 손 틈에 끼인 때가 견딜 수 없어서 아예 틈을 없애버리려는 생각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면서 손톱이 건반과 부딪히며 내는 잡음이 싫어서 더욱 손톱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그 후로 습관은 버릇이 되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버릇.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초조하거나 긴장될 때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그러한 사람은 보통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띤다고 한다. 균등하지 못한 손의 윤곽이나 빗겨진 살점은 매우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 행위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이 없어지는 동시에 미세한 고통이 느껴져서 환각제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고요와 평화를 깨는 반역의 솟아남들.

아이러니하게도 손이 길고 가느다랗고 손톱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긴장의 인내를 그 사람은 견뎌내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무튼 내가 그러한 손과 손톱을 좋아하기에 손톱을 물어뜯는 건 버릇으로 여겨져왔다. 극복해야 할 비윤리성의 대상.

가끔 손톱 물어뜯는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다는 상상을 할 때면 안쓰러워진다. 근데 사람들은 초조와 긴장을 어떻게 흘려보내는걸까. 모기에 물려 간지러워 미칠 것 같은 것을 어떻게 참아내는거지.


시험기간 이후로 손톱은 심각하게 패였다. 처음엔 감정적인 이유로, 그 다음엔 시험의 압박으로, 최근엔 고민의 연속들로. 거슬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일주일 내내 하루에 서너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했고 놓치는 것이 있을까 길을 걸으면서도 계속해서 손가락을 꼽으며 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책임자의 자리에 서게 되어 그 부담이 막중하기도 했다. 공부를 잘 하고 싶고 똑똑하고 싶었는데 멍청하고 느리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각인하는 패턴이라 괴롭기도 했다.

그 틈 사이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따금 과분하게 행복하기도 했다.

문제는 몸이 너무 안좋았다. 막걸리 몇 잔에 일주일 동안 복통과 설사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와 술만 집어넣었으니 몸이 상할 만도 했겠지.


오늘도 새벽을 지새고 아침 여섯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부산에 왔다.

김 빠진 세영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누구보다 싫어할 걸 알기에 그냥 우물쭈물 넘어갔다. 덜 싫어할 걸 고르는 건 그지같은 일이다. 미안하네.

모기도 없고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은 시절이다. 작년의 시월을 떠올리게도 하고 그만큼 처연해지기도 한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딱히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아닌데. 집에 일찍 가서 쇼파에 누워 티비나 보다가 지루해질 쯤 과제나 할까. 내일 여수 가는 길에 꼭 사회학 텍스트 다 읽고 쪽글도 써야지. 그리고 일요일은 페미니즘 보고서 완벽하게 쓰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광주도 생각해야지. 아, 인권재단 자료 넘겨줘야 하는데 이놈의 게으름. 반성해야한다.


1. 선택적으로 생각과 사유를 한다. 따가운 햇살이어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길거리에서 기절했을거다. 그렇게 집에 들어왔는데 냉장고 옆에 긍정적인 단어와 문장이 쓰인 종이가 붙어있었다. 어느날 엄마가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해서 좋은 말들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짜디짠 된장찌개와 잘 발라진 조기를 구워주며 마주 앉은 아빠는,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보기 싫다며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간다. 그것도 제트기의 속도로 날아간다. 엄마아빠에게 나는 상수이며 당위적인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는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여수 가는 동안 잘 얘기를 해야겠다.


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승환의 목소리를 수변공원 걸을 때 처음 들었을 거다. 너는 꽤 많이 아픈 것 같다. 내려간 눈꼬리를 가진 너의 눈이 순하기만 하다가 슬프기만 해졌다. 솔직해져, 담아두지마, 라는 일방적인 주장과 조언이 어쩌면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너에겐 일정 위로와 따스함이 되었을 거란 가정을 하면, 이 얼마나 말은 위선적이고 위악적인가, 덧없어진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었을 수도 있고,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다 요즘 다양한 절규의 모습들을 군데군데서 목격하는데, 이놈의 구조주의는 나를 허탈하게 한다. 학생회와 사회학의 탓인지 덕분인지, 우리의 마음과 사건을 둘러싼 구조에 방점을 찍게 된다. 그건 너무나도 자명하고 명백하지만, 거대해서 공허하기만 할 때가 많다. 원인을 분석할 수는 있으나 딱 거기까지. 할 수 있는 게 공감과 지켜보는 것 뿐이라면, 우리의 손바닥 위에 있는 건 공기 한 줌일텐데 한없이 작아만진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느 때와 같다 말했지만 사실 아니다. 꼭 지금의 너가 아니었더라 하더라도, 여느 때는 항상 수정해야할 것이라 생각해왔었기 때문이다. 미뤄왔던 건데, 그래서 더욱 미안한 건데, 지금의 너와 겹쳐지면서 더욱 신중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때떄로 좋은 사람으로서 따스함을 툭툭 던지는 것으로 나름 차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얼마나 건방졌나 싶다. 어찌되었든,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 언제든 마주할 채비를 한다. 발가벗겨진 모습이든, 뒤집어진 날 것이든, 떠나지 않고싶다. 그리고 그런 나의 우직함과 무딤이 책임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정치를 해야겠다.


3. '멋지다'라는 말. 나의 감정에 대해서는 꽤 잦은 빈도로 살펴보고 다독이는데, 실증적인 나의 '보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하여.

따뜻한 감성으로 살뜰히 챙기고 어느정도 진중하며 어느정도 가볍고 알 수 없는. 음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주는 게 많지만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얼룩덜룩한 사람(?). 그러니까 종종 진실되고 진짜인데, 나의 얘기를 잘 하지 않거나 힘들거나 슬픈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러티브를 조직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에피소드를 기억해내는 습관이 없다. 그리고 힘들거나 슬퍼하는 경험이 거의 없다. 못하는 것들이지 하지 않는 것들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그런 액션을 취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근데 정말 알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도 든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과 내가 갖는 감정들이 지극히 사적이라거나 지극히 내면적인 것일 때 숨기기는 하는데, 그것들은 스펙트럼에서 극단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도 어느정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보여줬을 때 도망치지 않을 자신 있어? 감당할 수 있겠어? 라는 마음. 곧 내가 너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혹은 너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전자에 좀 더 힘을 주긴하는데, 내가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당신을 덜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그래야 할 책임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면 책임과 의무로 형성된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부분에서 꽤 비겁하다. 그래도 나름 발전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보자.

'멋져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보통 활동의 이야기에서 그런데, 거부감이 든다. 보통 그런 마음은 '넌 나를 잘 모르잖아'라는 졸라 못된 마음의 발로인 걸 안다. 더 일치된 삶을 살아내야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진심을 다해야한다. 치열하게 고민해야한다. 다만 그것이 나를 죄이는 사슬이여서는 안된다. 그 경계와 리듬을 잘 맞춰야한다.


4. 여행. 당신이 갑자기 낯선 말과 마음을 발설했다. 혹해서 당장 그렇게 하여 나름 동떨어진 객관화된 말을 덤덤히 말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내 다시 접었다. 사실 그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당신과 이제서야 낙인 찍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마음 속에 들어와서이기도 하다. 당신은 관리되지 않은 보석이 되었다. 그렇게 남아주어 내게도 당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다시 말해본다. 당신, 어여삐 행복하기를 바래요. 행복하세요.


3'. 내게 기대된, 혹은 프레임화된 상징들이 있다. 뭐 그것이 허상으로 드러나거나 실패된다해도 실망하거나 뒤돌아서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그러한 말들이 불편하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의 들뜸인 것 같기도 하고, 태생적으로 뜨거운 사람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난 아닌데, 라는 하나의 마음과, 인간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아, 그냥 소소하고 소박하게 희망하고 만족하고 애닳아하자, 라는 하나의 마음이다. 그렇지만 오랜만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동지애에 자극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할 것이나, 동시에, 네가 실재로부터 상처받거나 억압받진 않았으면 좋겠다. 마냥 치솟는 불꽃보다 낡은 기관차의 처연한 증기가 나는 더욱 좋다. 그래, 어찌되었든 우리는 서로 크고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다. 시간을 더 공유해보자.


5. 뭐 해먹고 살지. 요즘 주위 사람들이 진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만 빼고. 돈. 자본. 황금. 별 생각이 없다. 흙으로도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좀 짜증난다. 나에게. 나도 교환학생을 갈까.

요즘 직장생활에 대해 어렴풋이 상상한다. 이렇게 바쁠 시간이 직장만큼은 아닐 것 같긴 한데ㅋㅋㅋ 무튼 어른은 쉬운 것이 아니구나, 실감한다.


6.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것들에 대해 고찰해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이라거나, 표현의 방식이라거나, 품게되는 마음들에 대하여.


7. 언니가 곧 도착한다. 세영이를 못 본 것이 너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미련을 남겨두고 가야겠다. 신경이 곤두섰던 일주일을 차분히 내려놓고 잘 쉬다가 다시 올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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