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진영더러 말했던 것 같다.
"힘들고 아픈 걸 말하는 게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인 줄 믿어왔는데, 아닌 것 같아.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도 자꾸 떠오르는 것도 모두 힘들어. 그만하고싶어."
끝끝내 절벽인 말인 것을 안다. 그렇지만 한치의 속임 없이 모두 진심이었다.
자꾸 손틈새로 모래알이 빠져나간다.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는다.
- 진영(과 은기)과의 얘기, 그러니까 윤리나 권력에 대한 세밀함들은 아무 힘이 없다. 마음을 다독여주지도 않고 목표를 세우게 하지도 않는다.
- 서영에게 대체 뭐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더 많은 아무 것을 모르는 서영이는 자꾸 마음 아프게 불안함을 가감없이 발설한다. 그에게 몸부림인 줄 알지만 그리고 그것이 못내 서럽게 미안하지만, 더이상 얘기할 힘이 없다. 서영이는 누구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기에 더 많은 걸 공감하고 공감받을 수 있겠지만 벗어나고 싶다.
- 거대한 불신을 보았다. 나는 이미 괴물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사정없이 할퀴었다. 이거 대체 어떻게 고치는 거야.
- 집 공간 채우는 게 제일 쉽겠다. 빨리 집정리하자.
- 시간표. 학기 계획 세우기. 이번주 안으로 끝내자.
- 취준. 제발.
- 세진. 좀만 미뤄두자.
- 현희는 내일 생일이다. 답장을 하자.
- 8월 9월의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던 현욱을 외면하는 중이다. 천벌 받을 거다.
대갈빡이 터져버릴 것 같다. 생리와 두통은 악마의 조합이다.
도망치고싶다. 어디로든 가버리고싶다. 며칠만 울다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