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날이었다.

어느 손톱도 남아있지 않을만큼 바싹 타들어간 손톱은 어느것도 집어낼 수 없었다. 허공을 내젓는 손길에 벌겋게 드러난 속살의 따가움만 아릿하다. 하루종일 아팠다. 멸균된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굳이 들추고 건드리는 탓에 도통 아물지가 않았다.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잘근잘근 공기 속 어딘가를 응시했다. 한 문장의 쓰고 잠시 눈을 감았고 한 문장을 쓰고 잠시 얇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도저히 위잉거리는 소음이 멈추지가 않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텁텁하고 쓰디쓴 침을 삼키고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선다. 증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메마른 손을 또 벅벅 씻는다.

성실한 후회는 지겹도록 찾아왔다. 어제의 말을 곱씹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자꾸 풀어져 길을 묻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을 뿐이다. 너는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와 같이 서걱였을 뿐일테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약간의 부족한 산소로 내다보아야 했을 것이고 앞으로의 하얘지는 아득함에 잠깐 가슴이 막혔을 것이다. 그것 뿐이다. 그것 쯤으로 오늘의 초조함을 소진했다.


나는 왜이리도 먹먹한 것인가. 무섭도록 명징한 것이 정말 마지막임을 알리는 것만 같아 더욱 처절해지기만 한다.

이제와 말을 토해낸 나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안녕과 안녕 사이 어디엔가 서성였다.

사무치는 말을 보았다.

<서러운 말에 대해 얘기했다. '미안한데, 나는 이제 당신이 궁금하지가 않아.' 여전히 굳세다, 이 말은. 암전이다. 틈이 보이지 않는 불가능이다.>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한 시절과 화해했다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당신이 너무 천진난만하다. 어떤 상처는 한 사람을 장악한다. 그건 남몰래 뼈에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거나, 혈관 속을 흐르는 거다. 끝끝내.>


몇 번이고 지난 서사들을 시간 순서대로, 강렬함의 크기대로, 필요한 부분대로, 그렇게 편집해서 각색했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과 그 속의 우리를 다시금 불러오는 일이었고 그래서 사랑을 되뇌이는 의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여전할 수 있었기에, 허망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언젠가 그 습관을 멈춰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기억 속에 갇혀 그 곳에 너를 박제하고 신화의 종말로 마무리 되기를 바랬던 마음을 들켰을 때, 이제는 이 제의를 끝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은 애먼 아쉬움을 증폭시키는 일이었고 지금의 부재를 선명하게 하기만 했으니까.

그리고 오랜만에, 처음 둘이 만나는 자리의 사람과 서로의 연애와 사랑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언제 어디에서도 사랑의 흔적과 자국을 더듬는 눈빛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쓸쓸함과 온기를 되감는 것이 얼마쯤은 슬프게 처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랑이 있었어, 정도로 단촐하고 늠름하게 입술을 닫고 싶었다.

오늘 만난 사람과는 들큰하게 침묵을 즐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에게 어떤 힘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이유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너에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가진 적 없는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만나지 않은 인연을 헤어진 것처럼, 반딧불이의 빛으로 느즈막히 말을 꺼냈다.

말하는 것이 그리 힘겹진 않다. 이제는, 갈등과 화해의 조미료가 적절히 버무려진 시나리오의 흥행성 정도가 되었고 나는 점점 진짜가 무엇이었는지를 망각해간다. 언젠가는 너라는 사람이 있었다-정도로 압축될 것이다.


찢어진 입술 틈 사이로 피가 맺혔고 겨우 아문 입술 주위로 겨울 바람을 맞은듯 빨갛게 터간다. 자주, 아프다.

벅찼던 오늘은 사람이 아름다웠고 사랑이 아름다웠다.

그만큼 너에게 미안했고 너에게 고마웠다.

나는 속으로 가지말라고, 머물라고, 분절된 음 사이로 힘겹게 흘려보냈지만

이내 곧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나-억울해졌다.

너의 기도와 너의 침묵은 종종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아무것도 아님이다. 아무것도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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