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막을 내리며 습관처럼 별을 바라봤다. 늘 습관처럼 "난 별이 될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유난히도 모래를 씹은듯 까슬하고 텁텁한 일주일이었다. 연희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이제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어느정도의 탄력성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겼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힘은 힘이 아닐 지도 모른다. 더이상 휘청이며 스러질 수 없기에, 더이상 졀벅에서 누구를 에어벡 삼아 몸을 던질 수도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가로등 불빛만 내리쬐는 골목길을 걸으면서라도 일인분의 삶을 잘 살아내자고, 나로서 온전할 수 있는 걸음을 걷자고, 가슴에 눌러 담았다.
그럼에도 일주일은 너무 길었다. 월요일과 화요일과 수요일과 목요일의 넘김들은 매순간 스러져가는 시야를 붙잡는 순간들이었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씻지 않으면 잘 개어진 옷을 입지 않으면,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뜯어내고 싶어질 것 같았다. 매일 정든 공간을 떠나 이사하는 마음으로 서글픈 동시에 매정해야했고,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으며 수없이 뺨을 맞는 신기루를 경험해야했다. 이제서야 익숙했고 지루했던 곳에서 떨어진 곳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안전한 과거였고 과거였기에 변할 수 없었고 그래서 허구의 과거를 헤엄치는 건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반면에 이곳은 너가 남겨둔 진공이 위태로이 떠돌고 있었고 주어진 것들을 해내기엔 멍청한 내가 있었고 낯선 새로움들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받고 의심하는 규칙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한 달, 두 달이 몸에 스미게 되어서야 이곳의 박자에 멀미하지 않을 수 있다.
한강에 다녀왔다. 봉오리가 힘을 내기엔 차디찬 바람이 쉼없이 불었다. 대여섯시간 동안 바람을 맞았더니 온 몸이 으슬으슬하다. 감기에 걸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건 싫다. 아픈 건 정말 싫다. 나의 나약함과 약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도 싫고, 여러가지 말들로 아픔에 대해 미안해야하는 것도 싫다. 나의 약함을 더이상 열심과 노력의 찌꺼기로 보게 되지 않기도 했고, 습관적으로 뱉어진 걱정과 염려의 말들로 비슷한 레퍼토리의 지난 말들에 실소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현희가 말했던 현희 주위의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냥 밝고 희망적인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온기와 빛이 뿜어지니까. 보통 그런 사람들은 정과 사랑이 많은 경향이 있기도 하고. 무튼 밝고 희망적인 표현이라기보다 내면으로부터 숨길 수 없는 들끓음이 흘러넘치는 사람들과는 언제나 달뜨게 된다. 이쁜 인형과 맛있는 음식처럼 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만 같은.
그럼에도 나는 비관을 인정하고 온정을 별 것쯤으로 여기지만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서 뚜벅뚜벅 휘적휘적 걷는 사람들. 원심력에 이끌리듯 자꾸 무언가로 걸어가는 자신을 계속 경계하면서 비틀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때로는 한없이 나무같이 멀고 묵직한, 때로는 한없이 쓰라린 생채기를 멀뚱히 바라봐 연민을 느끼게 하는, 때로는 한없이 밑바닥을 괴로워하는.
작년 이맘 때도 솔루셔니들끼리 여의나루에 갔던 것 같다. 유부초밥과 소세지와 과일들이 가득한 도시락을 싸서 시린 햇빛을 받으며 소소한 행복에 충만했었는데. 올해는 상대적으로 날이 추운가보다. 계속 몸이 시리다. 다시 냉수샤워를 시작했는데 오늘은 따스한 샤워를 해야겠다. 집을 말끔히 치우고싶은데 중간고사 끝나고야 가능하겠지.
나를 사랑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언제나 테두리에서 경계를 부수고 경계를 그엇다가 경계에 들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으니까. 무튼 나같은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선명해진다.
처음 해본 생각인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충혈된 눈동자를 어찌하는 것일테니까.
오늘은 다시 힘을 내어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야겠다. 피아노치는 사람을 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할까를 떠올렸다던 현아의 말이 욕조에 몸을 담근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그것이 삶의 의미든, 운동의 의미든, 관계의 의미든, 지치지 말고 지루함을 계속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