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럴 지도 모르겠다.

 :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서 내가 아닌 무엇이기만 하면 모두 용서가 되고 모두 그럴싸 했던 때가 있었다. 자존감을 높이자고 시작했던 노력들이 어느 사이에 나를 마냥 거울 속에서만 살게 하게 된 걸까. 세르반테스는 온데간데 없고 돈키호테만 남아 지리한 관성들로 덧대고 치장하는 모습에 취하게 된 걸까. 그래서 나라는 못을 박아두었더니 깊게 패인 홈에서 곪아가는 걸까.


요즘의 헛헛함들을 언어화해야만 한다.

 : 결국 내가 걷고자 했던 길의 반대로 걷게 되고 말았다. 지구 반대편의 미세한 쓰림에도 공감하고자 했던 항해는 돛을 잘못 펼친 탓일까, 자꾸 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가는 것만 같다. 방금 어떤 생각이 스쳐간 건지 떠올릴 수 없지만, 꽤 서글프다. 금요일에 노수석 추모제가 있다. 그 때의 떨림을 잊지 않고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작은 소중함들이 점점 옅어져만 가서 너무 슬프다. 눈물만 쉬운 어른이 되고싶진 않다. 방파제에 스러지는 파도를 보고싶다. 그 곳에서 낚시를 하면 좀 정신이 차려질까. 데미안 라이스가 많은 시간을 보냈다던 그 호수는 어떨까. 나는 때로 과자처럼 현란한 봉지 속에서 공기만 소모해대며 알맹이도 없는 밀가루 덩어리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뜨거워서 발개지는 입술을 느끼며, 매순간의 감정을 일기처럼 말하고 대화의 통일 없이도 항상 곁을 나누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 혹은 연인 아니야? 라고 되묻는 말에, 아니야 친구와 연인은 달라, 그리고 이건 친구야,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어 그만 두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함께 있는 사람이 되고프기도, 필요하기도 한 간절한 마음이었다.


행복하자.

 : 충무로는 신기한 거리였다. 영화와 오토바이와 애완동물들이 공존하는 곳. 나는 너와 몽골의 어느 사막 언저리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먹는 상상을 했다. 라플란드에 가지 않게 되더라도, 그 땐 내가 주위에 신경쓰지 않은 채 온전히 나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때였으면 좋겠다. 그곳이 몽골이든 그리스든 헝가리든 크로아티아든, 아마 처음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날과 처음 비오는 바다를 보던 그 때를 다시 그려낼 것이다. 나는 이제 네가 조금 무서워졌다. 함께 하지 않는 일상들과 시간들은 아주 익숙하겠지만 네가 없는 생에 익숙해지는 데는 꽃이 피고 지길 수십번을 기다려야할 것만 같다.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행복을 자랑해야지.


깔끔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찌질함과 깔끔함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의 문제를 질질 끌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명징한 말들을 정확한 목표에 겨누고 누더기처럼 애쓴 말들로 자꾸 멀어지는 말이 아니고싶다. 그러자 문득 세영이가 보고싶었다.


지나간 사랑들을 박제하는 것에 대하여.

 : 감정은 연애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분명 다르다. 일종의 계약-노력과 의지-인 관계이니까. 관계의 양상과 특질은 보통과 다를 바 없을테지만 연애는 연애를 정의내리는 데 있어서 특수성을 부여하는 본질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폴리아모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서라는 감정적 이유로 혹은 가부장제 사회의 산물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가장 이상적이고 바른 연애관계는 다자연애라고 하더라. 갈수록 선명해지는 확신은, 그건 욕심이다.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안압이 높아져서 눈의 핏줄 뿐만 아니라 머리를 흐르는 핏줄이 터졌다. 피가 흘렀고 피눈물이 났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우리 딸 눈에 피눈물 나게 하지 마라 라고 하는가보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문득 살 날이 그리 길지 않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할까 궁금해졌지만 별 소득 없는 질문이었다.


잠온다. 시간이 촉박하다.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듯, 3월이 잘 지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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