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세영이는 여전한 목소리였다. 꿈을 한참 뒤척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지독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불나방처럼 이 서걱임 속으로 달려들고싶다. 번쩍임과 동시에 활활 타오르고선 다시 누에고치가 되는 것.

길을 잃은 것 같다. 위플래쉬를 보고 매순간 울컥였다. 꿈도 따스함도 헤매일 뿐, 이 수면 위로 부서지는 햇살만 일렁인다.


당장이라도 택시를 타고 현희에게로 가고싶다. 와락 안고선 엉엉 소리내어 울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듯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거다. 섣불리 질질 흐르는 슬픔들을 모른채 저멀리 내버려두는거다.


이곳은 어디쯤일까. 마냥 아무 생각 없이 도처에 널린 쾌락만 좇아 뛰고싶은 마음을 힐끗 눈치보다가도, 만약 지금의 곳에서 훌쩍 떠나버리는 상상을 하면 또 다른 공허함에 아쉬울 것만 같아서 꼼짝 못한다. 플렛처는 눈먼 열정을 달아오르게 해서 한계를 뛰어넘으려했다. 천재의 광기같이 섬득하고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 눈이 멀어버렸으면 맘이 편할까싶기도 했다.


엄마가 보고싶다. 엄마의 요리냄새가 보고싶다.

은밀한 우울을 누설하는 나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뒷면을 꺼내 이곳에 투신할테니 덤덤히 지켜봐달라고 읖조려볼까. 달궈진 이마를 데리고 찹찹한 호수의 밤에 가자. 어찌할 수 없는 질서 속에 숨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거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음식이 몸 속에서 뒤틀리는 느낌이어서일까. 너는 감정이 휘몰아치는 사람이잖아-라는 말에 욱해서 아니야, 다른거야-라고 부정했으나 실은 부끄러워서일까. 어떻게 똑똑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아득함이어서일까. 기대하지도 희망하지도 않았던 사람/사랑들이 이렇게 간단히 흩어지고 있으며 그럴 수 있다는 견고한 편견이어서일까. 결국엔 이 완강한 문법들이 실은 아니라고 말했던 구원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어서일까. 가을밤의 달처럼 식은 절정이 마음 속에 굳어버려서일까.


미시령에 가고싶다. 김영하와 한강이 배경으로 그려낸 그곳의 풍경들은 웅장하나 단촐할 것만 같다. 몸이 후져져서이겠지 이 마음들 모두. 어디까지 괜찮다고 말해야하는건지 모르겠다.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땐 여기에서 버텨야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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