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埃及


이성복


1

오늘 다 외로와하면

내일 씹을 괴로움이 안 남고

내일 마실 그리움이 안 남는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자 세 편의 映畵를 보고

두 명의 주인공이 살해되는 꼴을 보았으니

운좋게 살아남은 그 녀석을 너라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자, 살아 있으니

수줍어 말고 되돌아 취하지 말고 돌아가자

돌아가 싱싱한 떡잎으로 자라나서

훨훨 날아올라 충격도, 마약도 없이

꿈 속에서 한 편 映畵가 되어 펼쳐지자


2

내가 떠나기 전에 길은 제 길을 밟고

사라져 버리고, 길은 마른 오징어처럼

퍼져 있고 돌이켜 술을 마시면

먼저 취해 길바닥에 드러눕는 愛人,

나는 퀭한 地下道에서 뜬눈을 새우다가

헛소리하며 찾아오는 東方博士들을

죽일까봐 겁이 난다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天國에 셋방을 얻어야 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慾情에 떠는 늙은 子宮으로 돌아가야 하고

忿怒에 떠는 손에 닿으면 문둥이와 앉은뱅이까지 낫는단다, 主여




진실을 발설하지 않고 그것이 오롯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은 늘 어렵고 옳고 아름답다. 세상에 드러나 훼손될 진실이라면 세상으로부터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임무이다.

그러는 동시에 나를 위장ㅇ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너를 상처주지 않기 위한 말이어야한다.

말을 머금자.


절을 하고 세뱃돈을 받고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국 사회'와 '세대간 갈등', '주거문제', '삶의 행복' 등의 굵직하고 거대한 단어들이 오고 갔다.

쉰이 넘은 다섯 명의 어른들은 지웅이오빠야의 쉴 틈없는 말-연설 앞에 멍하게 작아져갔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 그 맞는 말들이 귓바퀴를 웽웽거리며 메아리치다가 튕겨나가는 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구구절절한 담론들은 반박할 수 없이 빼곡하게 단단했으나 어른들은 설득당하거나 감명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맞장구치며 끄덕이거나 울컥하거나 목까지 차오른 말을 삼켜내고 있었다. 그간의 답답함을 사이다의 트림으로 소화해내는 것도 같았으나 곧 메스꺼움이 밀려오는 것도 같았다.


"부모를 끊어내면 됩니다"라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

아무도 그에 대해 욱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덤덤하게 듣고만 있었다.

부모가 시키는대로, 원하는대로 살아온 지금의 자식세대. 차를 갖고 집을 갖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아온 부모의 경험을 겪어보지도 가질 수도 없는 자식들. 자식들의 불행과 결핍을 역설하면서 끊어내야 한다던 자식들의 구호는 정말 실효가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 말은 프로이트가 말하던 '아버지를 죽이는' 분절의 신호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찝찝했던 것은, 한국사회에서 '부모를 끊어내는 것'과 프로이트가 말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져서였다.

나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상징적 존재인 아버지를 죽이고 온전한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 즉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해방되는 독립. 그렇지만 우리의 맥락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숨을 죄이는 굴레와 족쇄이므로 거부하고 부정해야한다, 의 의미로 들리지 않았을까.


나 스스로도 내가 커가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나이를 먹어 물리적으로 커가는 것도, 성숙하는 것도 무서웠다. 어렸을 때의 안락하고 포근하던 기억 속에 숨어서, 나의 존재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시간의 과정을 밟지 않길 소원했었다.

나한테조차 납득되지 않는 나의 성장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더 긴 대화가 필요하다.

확신과 규정은 때로 독이 된다는 걸 명심하고. 잔인하게 칼을 겨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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